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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Ge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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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33. 종교와 실재의 본성


현대인의 사유는 종교를 권력투쟁을 위한 수단, 혹은 대뇌망상의 산물로 자연스럽게 이해하기도 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이는 마치 바둑이 권력쟁취를 위한 놀이나 뇌세포 활동의 산물이라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주장이다. 사실 종교와 현실권력의 관계나, 종교와 뇌의 관계를 치밀하게 고민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고민은 종교의 핵심이 권력론의 관점이나 뇌의학의 관점에서 어떻게 결부되느냐를 고민하는, 경계에 관한 성찰이다. 그것은 종교가 말하려는 바를 파괴하지 않고 오히려 경계에 대한 집중 속에서 종교의 메시지를 풍부하게 직조한다.

종교는 가장 으뜸된 가르침이다. 세상에는 물리적 세계에 대한 자연과학, 생활세계에 대한 사회과학 등등 다양한 방식의 과학, 그리고 가르침이 있을 것이다. 그 가운데에서 종교가 가장 으뜸된 가르침이 된 이유는 사뭇 흥미롭기까지 하며, 종교를 조롱하거나, 종교를 버리는 현대의 양상들을 헤아리면 사뭇 기이하기까지 여겨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종교가 무엇인가를 자문한다면, 종교가 가장 으뜸된, 근본적인 가르침이라는 전통적인 명제를 뒤바꿀 수 있는 다른 대안이 없어 보인다.

종교는 삶의 근원과 종말에 대한 본성적 성찰의 산물이다. 물론 이러한 성찰의 산물로 부여된 여러 사회적 조직이나, 제도나, 강도의 흔적인 물리적 힘을 다시 집착하는 부작용이 역사적으로는 존재해 왔다. 종교는 힘일 수 있으나 힘 자체는 종교가 아니다. 그리고 힘 자체를 지향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종교적일 수 없다.

우리의 삶은 불가피하게 다양한 언어를 생성한다. 그리고 그것은 많은 경우 우리에 의한, 우리를 위한 언어일 수 있다. 사실 언어가 없는 삶은 외롭고 적막하며 단조로울 수 있다. 생의 언어는 외로운 우리들의 삶을 시끄럽고, 활기차게 만들며, 생동감을 부여한다. 그러나 그것은 궁극적으로 생으로부터 나온, 생을 위한 언어일 수 있다.

이와는 달리 우리는 생의 궁극적 뿌리와 목적에 관하여 관심을 갖을 수 있다. 이 관심은 외로움을 근원으로 하는 생의 언어와는 다른 방식의 무게를 지닌다. 그것은 생명을 걸고 고민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자연과학을 통하여 저 표면의 질감을 탐구한다. 그리고 철학을 통하여 저 표면의 질감과, 저 표면을 응시하는 사유 사이의 함수를 탐구한다. 자연에 관한 학문과 정신에 관한 학문은 우리의 공고한 '유리알' 안의 '유희'일 수 있다. 여기에서의 유희는 긍정적인 의미이며 그 자체로 소중한 가치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유리알을 넘어선, 궁극적으로 저편에 닿아 있는 영역에 대한 물음을 갖는다. 그것은 유리알 내부의 자족적 논리를 넘어서는 초월에 대한 물음이며, 시선과 대상 사이의 관계보다 더 근본적인 시선의 탄생과 소멸에 대한 물음이다.

물론 우리의 모든 언어는 우리로부터 나왔기 때문에 유한한 존재의 흔적으로부터 결코 온전히 벗어날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유한성의 한계를 넘어서서 부단히 생의 근본과 목적에 관한 언어를 끊임없이 고안해 내고 찾아나가는 여정이 바로 종교이다. 그러므로 종교라는 언어는 유한성과 결부된 무한성에 대한 궁극적 지식을 지향한다.

물론 종교는 지식과 학을 궁극적으로 지향하지 않는다. 종교는 지식과 학의 근거인 사변과 이성 마저도 상대화 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러한 지식과 학이라는 '이성'이라는 매개성의 산물에서는 진정한 의미의 종교적 가르침이 결코 얻어질 수 없음을 강조하기도 한다. 오히려 종교의 기본적인 요소는 '이성'이 아니라 '믿음'에 있다고 말한다. 그물을 잘 던져야 고기를 잘 잡듯, 진정한 지식은 진정한 믿음에서 부수적으로 구현된다고 보는 관점에 종교는 서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종교에 대한 이해를 오늘의 현실종교가 자행한 여러 그늘과 상흔과의 대면에서만 출발할 필요는 전혀 없다. 물론 현실종교가 드러내고 있는 비종교적인 모습에 대해 우리는 충분히 실망할 수 있으며, 바로 그러한 실망은 종교가 인간에게 얼마나 소중한 가치인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더욱 더 중요한 것은 종교가 없었던 인간이 왜 종교적 사유를 갖게 되었고, 그 종교적 언어가 궁극적으로 무엇을 표현하고자 하였는지를 헤아리는 점일 것이다.

종교는 언어적일 수 있다. 그러나 비언어적인 특성을 지니는 이 실재의 종교적인 것들을 언어화하려는 노력의 산물인 것이며 그것은 구체적인 현실 종교일 수 있다. 종교는 어찌 보면 모든 형상을 넘어서는 무한성에 닿은 질료와 가치에 대한 비매개적 직시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실재의 본성을 가장 깊은 곳에서 타진하려는 유한한 존재들의 용기와 고뇌와 발견의 산물인지도 모른다.

게다가 많은 경우 이러한 종교적 깨달음은 능동성의 영역보다는 수동성의 영역 속에서 이루어진다. 이는 아래에서부터 위로의 방법론을 추구하는 모든 이성적 과학적 상향논리가 극단적으로 대면하는 절망과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아무리 체계내적 시선으로 체계 밖을 이해한다 하더라도 결국은 그것은 밖에 대한 안으로부터의 투사일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투사에 끝끝내 저항하는 마지노선, 혹은 이 모든 시끄러운 언어를 생산해 내는 그 토대와 근원에 대한 해명은 결코 능동성을 통해서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종교는 실재의 본성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서 그를 비매개적으로 구현하려는 인간의 궁극적 질문의 산물일 수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피투된 존재이듯, 그 실재의 본성에 대한 언어적 구현 또한 인간의 능동성 속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다. 오히려 그 실재의 본성과 타진된 종교적 언어도 인간을 향해 피투되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그것은 실재를 향한 우리 내부의 시선과 감각과 언어를 포기하고, '밖에서' 오는 것에 대한 경청 속에서 더욱 의미있게 구현된다.

그러므로 종교적 존재론에 있어서는 실재의 신비와 우리 내면의 수동성이 중요한 특징적 요소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종교적 형식에 의해 인도되어지는 우리의 구체적인 삶은 능동성에 대한 포기, 믿음, 열망, 사랑, 헌신과 같은 것들이 된다. 그것은 인간을 노예로 만들고 인간의 본성을 파괴하는 것이라고 하기보다는, 더욱 인간의 삶 가운데에 실재의 본성을 현시, 체험, 구현하게 하는 특징들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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