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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Geist
Homepage    http://theology.co.kr
제 목    21. 천국과 지옥에 대하여


나는 가끔 가다 의미심장한 질문을 간혹 발견한다. 천국은 어느 공간에 존재하나? 천국에는 누가 사나? 지옥 유황불의 온도는 몇도인가? 지옥불에서는 사람이 죽나 아니면 평생 고통속에서도 죽지 않나? 돌아가신 사람들이 천국에 다 존재한다면 천국은 도대체 몇 평방미터나 되어야 하나?

사실 질문하는 자의 진정성은 충분히 헤아릴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질문에는 무엇인가 '천국'과 '지옥'에 대한 근원적 성찰이 빠져있는 듯 하다. 살아있는 동안 우리는 죽지 않았고, 죽은 경우 우리는 더 이상 살아있지 않다. 라는 에피쿠로스의 견해를 우리가 고려한다면, 분명 천국은 어떠한 모습으로 존재하는가에 대한 질문 이전에 더욱 근원적인 질문이 던져져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

에피쿠로스의 이야기는 사실 가벼운 이야기 같지만 우리가 천국과 지옥을 헤아림에 있어서 가장 근본적인 문제를 건들고 있다. 즉 우리의 모든 천국과 지옥이라는 '공간적 사변'이 우리의 인격과 연속적일 거라는 전제와 선입견에 대해 회의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사실 천국과 지옥이라는 담론은 우리의 인격적 정체성과 보존을 전제로 출발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천국과 지옥이라는 관념의 성찰을 고려하기 위해서라도 우리의 인격적 정체성과 보존과 연속성의 문제를 우선적으로 헤아리지 않으면 안된다.

만약 어디엔가 천국과 지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연속성은 죽음을 거쳐 소멸한다면, 그것은 살아있는 자들의, 살아있는 자들을 위한 기호일 공산이 크다. 만약 어디엔가 천국과 지옥이 있을 경우, 게다가 우리가 죽음을 거쳐 어떠한 방식으로든 그곳과 접촉하게 되는 공간이라 한다면, 그것은 조금은 심각해지는 관념이 된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우리가 가볍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은 아래와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첫째, 우리 생명의 불멸-소멸관념과 천국-지옥관념의 연계성, 둘째, 천국지옥 관념이 등장하게 된 역사적 맥락, 셋째, 천국지옥이라는 개념의 문화적 기능이다.

에른스트 카시러는 플라톤의 사고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원형적인 사고를 극대화하였다고 평가한다. 즉 플라톤의 사고는 인간이 상상하고 사변해낼 수 있는 실재에 대한 가장 일반화된 측면을 잘 정리하였다는 비평이다. 이는 백두도 마찬가지이다. 백두는 서구철학은 플라톤철학의 각주라는 말을 하였다. 그렇다면 카시러와 백두가 강조하였던 그 플라톤의 생각을 통해 나온 원형적인 사고는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 이정도가 되지 않을까. 우리의 체험과 경험이 우리에게 구체적이고 자명한 것은 이 현실에서는 분명하지만 이러한 체험과 경험을 직조하는 그 모태는 이 현실에서 발견할 수 없고 추론할 수 없으며 추측하기가 어렵다는 관점이다. 이는 꼭 엄격한 이원론을 강조하려는 것이 아니다. 나라는 존재, 나의 생각, 내가 바라보는 이 자연에는 내 존재의 기원, 생각의 근원, 자연의 모태를 발견할 수 없다는 관점이다. 플라톤은 이러한 현실을 일종의 그늘로 이해하였으며, 이 현실을 지탱하는 근거로서의 세계를 이데아로 이해하였던 것 같다. 그러므로 그에게 있어서 우리가 경험하는 현실은 자명하지만 가상적이며 이 현실의 모태와 근거가 되는 지평을 설정하는 것은 현실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 더욱 합리적인 태도라고 본 것이다.

사실 플라톤의 이데아가 존재하는지 안하는지를 플라톤이 알고 죽었는지는 회의적이다. 어쩌면 플라톤에 있어서는 주워진 현실을 해명하고 이해하려다가 결국 현실에서 자족적으로 도출해낼 수 없는 그 이데아가 있어야 함을 강변한 것이며 그것은 일종의 진지한 요청개념일 수 있다. 현실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요청이 이데아일 수 있다.

이러한 현실을 더욱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한 요청 속에서 메타로서의 이데아가 나왔듯, 우리의 삶을 이해할 때에 우리는 직관적으로 이 현실만이 전부가 되어서는 안된다라는 어떠한 근원적 성찰에 이르게 된다. 우리는 현실로부터 나왔지만 우리는 현실을 모두 이해할 수 없다. 물론 우리는 우리의 마음대로 현실을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자유로운 삶이 삶에 대한 온전한 이해를 대변하지는 못한다. 게다가 우리의 삶이 보여주고 있는 그 모호함과 부조리함, 그리고 죽음의 관문에 대한 그 적막함과 무지는 자연스럽게 죽음 너머의 세계에 대한 물음으로 전이된다.

마치 이데아가 현실에 대한 지극한 합리적 이해에서 근원적으로 도출된 성실한 관념이라면, 천국과 지옥은 현실이라는 공간의 입구와 출구와 관련된 어떠한 저 너머의 세계에 대한 물음과 이해에서 등장한 관념이다. 그러므로 이데아나 천국과 지옥이라는 관념은 살아있는 인간에게 있어서 저 멀리 존재하는 대상이 아니라, 살아있는 인간의 이 아포리한 삶을 깊이 있게 이해하려는 과정에서 출현한 철학적이고도 종교적이며 문화적인 양식인 것이다.

물론 천국과 지옥이라는 세계를 '직접지'적으로 경험한 사람들이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그들의 경험은 그들 내면의 비매개적인 경험이며, 또한 경험한 자들은 우리로부터 멀어져갔으며 죽음의 강을 너머 우리들과 영원한 결별을 하였다. 생생한 이야기는 사라졌고 그들과의 눈빛을 나눌 수 있는 기회는 우리에게 허용되지 않는다. 책은 그들이 남긴 회색 흔적이다. 그러나 책은 그들의 비매개적이고 생생한 체험을 담아내는 도구라고 치기에는 너무나 둔탁한 수단일 뿐이다. 물론 천국과 지옥에 대한 직접지적인 체험을 연구하는 이들은 그 천국과 지옥이 자명한 실재라는 발견과 자각 속에서 어떠한 주장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수백년 전에 두 코끼리가 체험한 '사랑'의 성분을 그들이 남긴 상아조각속에서 발견했다고 주장하는 만큼 쉽지 않아 보이는 것들이다. 오히려 두 코끼리의 사랑을 오늘날의 코끼리들은 어떻게 '추체험' 하는지, 그리고 인간에게 있어서는 어떻게 '추체험' 되는지를 생생하게 지켜보고 해명하는 것이 더 적절한 작업일 수 있다.

그러므로 천국과 지옥에 대한 고민은 과거의 사라져간 흔적속에서 발견해야 할 보물단지가 아니라,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생생한 세계를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물론 우리의 천국과 지옥에 대한 관념은 과거의 전승된 천국과 지옥의 관념을 통하여 인코딩 된 면이 있다. 이러한 전통이 주는 관념은 한편으로는 자명한 것이며 그것은 과거의 역사성이 실재를 물들어가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허나 이러한 전통이 주는 관념과 과거의 역사성의 관념에 대한 문자적인 이해를 하는 그 순간부터, 진정한 의미의 천국과 지옥에 대한 이해의 노력은 관념의 유희가 되며 개념의 착종으로 추락하게 된다.

나에게는 아주 인상적인 기억이 있다. 생의 마지막을 지나가고 있는 온 몸이 바싹 마른 할머니, 뼈마디가 다 해체되어가고 있지만 여전히 영혼과 정신은 미미하게나마 기력이 남아 있었다. 그 아프고 고통스러운 와중에 할머니는 마지막 돌아가실 시점에 할머니의 어머님과 아버님을 찾으셨다. 아주 조용하지만 그것은 매우 간절하였다. 왜 죽음을 앞두신 할머니는 그의 부모님을 찾으셨을까. 그리고 그 부모님은 도대체 어디에 있길래 할머니는 어디에서부터 부모님을 부르셨을까. 점점 야위어지시면서 생명이 다 소진되어지시는 할머니의 마지막 숨이 끊어지셨을 때 저 멀리 계셨던 나의 아버님은 "어머님!" 하면서 할머니의 숨을 확인하시고 시체가 더 아직 굳어지지 않은 그 때, 준비한 옷을 갈아 입히셨다.

나는 개인적으로 인간의 생생한 삶이 먼저 존재하지 종교가 먼저 존재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종교와 과학과 문명은 우리의 자명하고 숭고한 가치이다. 그러나 그것은 삶을 위해 기여되고 전유되는,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가치이다. 또한 당대의 선조들은 결국 그들의 삶에 대한 성찰속에서 그러한 생각과 문명을 키워오셨다고 나는 생각한다. 오해의 소지가 없지 않지만, 가장 궁극적인 가치는 이 살아있는 푸르른 삶에 대한 긍정과 그 삶을 향한 열정과 노력에 있는 것이지, 회색처럼 굳어져버린 어떠한 오래된 건물과 노트와 종교적 재단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수많은 이별을 경험한다. 가장 강렬하고 슬픈 이별은 바로 우리와 같이 머물다가 사라져간 가족과 친척과 친구들일 것이다. 어제 우리와 같이 밥상에 앉아 있었던 아내가 오늘부터 더 이상 같은 한솥밥을 먹을 수 없다는 이 존재론적 충격이 우리 인간에게는 가장 큰 이별과 아픔일 것이다. 영혼은 익숙한 것을 그리워한다. 그러나 육신은 우리로부터 떠났다. 인간은 바로 그러한 육신에의 부재를 넘어 그리워했던 사람을 찾고 소망하고 다시 만남을 그리워하는 존재이다. 그것은 대단히 본능적이며 본성적인 것 같다.

천국과 지옥이라는 관념의 출현은 바로 살아있는 인간의 떠난 인간에 대한 그리움과 교감과 소통의 소망에 의거한다. 이럴 경우 천국과 지옥은 '저세상'이라는 관념이 윤리적으로 분화된 공간일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살아가는 이들의 죽은 자들에 대한 그리움과 소망과 재회의 관념이 종교와 문화 안에서 '저세상' 혹은 '하늘'이라는 관념으로 승화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저세상과 하늘이 실재로 존재하느냐의 여부와는 무관한 인간의 내면적 소망 체계에 의거해 구현된 터미놀로지이다.

천국과 지옥은 이러한 '저세상'과 '하늘'이라는 인간의 보편적 관념이 사회적이며 윤리적인 요구와 결부되어서 분화된 관념이다. 하느님이 저세상에서 천국과 지옥을 분화시켰다고 하기 보다는 이 세상의 무상함과 부조리함, 그리고 고통과 아픔의 대극적 자리를 천국과 지옥이라는 관념속에 투사시킨 것이다.

이러한 고안된 문화적 관념으로서의 하늘과 천국, 지옥이라는 관념은 궁극적으로는 이 생의 실재를 더욱 조화속에서 이해하고자 하는 인간의 신실하고 진지한 열망과 요청 속에서 직조되어진 관념이며, 그것은 우리가 실재로 하늘에 천국이 있는지 땅에 지옥이 있는지를 고민하는 사람들을 넘어서서 우리 일상의 무의식과 의식, 혹은 사회적 감성에 깊숙히 삼투되어 있다. 예를 들어 우리가  TV 속에서 수천마일 떨어진 국지전을 영상으로 본다고 할 때, 지진과 해일로 인하여 수많은 인명이 죽어가는 모습을 영상으로 본다고 할 때, 그곳은 지옥과 같다는 인상을 갖게 된다. 어떤 의미에서 지옥은 우리가 피해야 할, 그리고 우리가 거부하고 극복해야 할 세상의 그림자와도 같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에게는 천국의 관념을 다양한 방식으로 갖고 있다. 즉 우리에게 천국과 지옥이 어떠한 물리적인 공간을 점유하는 곳이라고 믿지 않아도 우리는 다양한 방식으로 천국과 지옥에 대한 원관념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다시 말해서 인간은 낯익은 것에 대한 친화력, 낯선 것에 대한 배타력이 자연적 본성속에 있는 것이며 이러한 양극적 본성의 강한 문화적 기호가 천국과 지옥이라는 것이다.

이는 어떠한 이유에서이건 우리가 이 실재를 선적인 것과 악적인 것이라는 가치의 도식 속에서 이해하고 살아가고 있음을 의미하고 선과 악의 특정한 이해방식이 삶과 실재에 대한 총체적인 표현 속에서 천국과 지옥, 천사와 악마로 구축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관점에서는 천국과 지옥, 천사와 악마가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러한 이름을 얻는 것을 '넘어서서', 삶에 대한 문화적 이해가 중층적으로 누적될 때 자연스럽게 도출되는 터미놀로지인 것이다. 실재의 경험에서 필요하지 않은 개념은 원래 존재하지도 않을 것임은 분명하다.

천국과 지옥을 고민하는 사람이 실질적으로 자신의 발걸음이 어느 밝은 곳, 혹은 어두운 곳으로 향하고 있는지를 고민하지 않는 경우라면 그에게 있어서 천국과 지옥은 과잉 개념일 뿐이다. 하루도 멀다하게 부벼대었던 사람이 그의 곁을 떠났을 때 그 이별에 가슴 아파하고, 그와 죽음을 넘어 대화하고 싶어서, 그리고 그와 언젠가는 다시 만나고 싶어서 열망하는 저 하늘과 천국은 이미 그에게 자명한 '공간'이 되고 그의 영혼과 삶에 뿌리 깊이 엮여 있는 자명한 '가치'가 된다. 백성의 고통 때문에 자신이 병을 앓거나, 지옥에 떨어진 이웃을 위해 자신이 불구덩이를 자처해 들어가서라도 그들과 함께 하고자 했던 몇몇 잘 알려진 현자 그들은 이미 여기의 고통스러운 지옥을 보고 있지만 그의 시선과 발은 이미 천국에 닿아 있다.

이 세상을 넘어 저 별 사이에 존재하는 듯한 천국과 지옥은, 우선 이 세상의 천국과 지옥을 이해하고 헤아리기 위한 '외삽'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천국과 지옥에 대한 이해의 출발점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이해는 소위 우리의 몸이 풀려진 이후 나타날 수 있는 천국과 지옥의 국면에 대해서도 중요한 첫 단추가 될 것이다. 신학은 궁극적으로 이러한 생명을 머금고 태어나는 인간의 창조와 죽음이라는 문을 관통하여 이어지는 인간의 종말을 조명하는, 이 아포리한 생을 이해하려는 궁극적 서설일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죽음 건너의 천국과 지옥, 저세상에 대한 문제는 사변의 영역, 심지어 신학으로도 접근해 들어갈 수 없는 완고한 문과도 같다. 그러므로 그것은 실재의 신비에 닿아있는 곳이며 그 곳을 조명함에 있어서 그 완고한 문을 열 수 있는 열쇠는 내면의 신앙과 믿음의 문제와 궁극적으로 결부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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