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신앙은 은총과 은혜를 중요한 의미로 받아들인다.
특히 개신교 전통은 '은총'에 대한 강조를 역사적으로 해 왔다.
오늘 나에게 던져진 질문은 "은총이란 무엇인가?" 이다.
우리의 인생을 생각해보자.
나는 지금 이렇게 거룩한 생명을
얻어서 '생'을 경험하고 있다.
우리는 무로 돌아갈 수도 있는 생명이고 삶이었다.
그러나 지금 나는 무가 아니라 생명을 경험한다. 나의 삶을 경험한다.
이 삶의 경험 안에서 우리는 삶에 대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그 의미는 이성적이기도 하고 학문적이기도 할 것이며 설명적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 의미로든 우리 삶의 출현 과정으로 '개입'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우리의 지금의 삶은 이미 태어났으며, 그 삶의 실재성 위에서
반성도 하고 의미도 헤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이 생명의 출현의
과정에 개입할 수 없으며, 단지 그 생명의 산물로서 이렇게 '의미'를 헤아릴 뿐이다.
우리는 여하한 어떠한 면에서이든 우리 삶의 출현 과정을 보거나 대면하거나 개입할 수 없다.
오히려 우리의 모든 행위는 마감되어진 우리 삶의 결과일 뿐이다.
은총이란 바로 우리가 이렇게 서 있는 삶의 근거 가능성,
혹은 삶의 기원에 대한 신앙적 고백인 것이다.
물론 과학자들에게 우리의 삶의 기원이란 물리적 구조들의 고도화된 결합으로
이해될 수 있다. 생물학자들에겐 결국 우리의 생명의 존속이 DNA의 확장을
위한 무한한 진행과정으로도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신앙은 바로 과학과 생물학에서 '물질의 결합'과 'DNA의 확장'으로
해명하는 그 지점을, 우리의 생명과 삶을 주신 그 근원자가 주신 은총의 선물로
고백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고백의 근거는 신앙의 '독자적인 합리성'에 의거한다.
신앙적으로 보면, 우리의 삶은 은총 위에 서 있다. 우리는 그저 우연히 존재한 생명이 아니다.
부모님의 사랑 속에서 우리가 이 세상에서 이렇게 생명의 기쁨을 얻고 존재했듯,
우리의 생명은 그저 그렇게 가볍게 출현한 것이 아니다.
이런 의미에서 자살은 자신이 주워진 생명의 기반에 대한 근원적 성찰보다
자신의 생명이 행할 수 있는 능동적 행위를 신뢰하는 것이다.
사실 생명의 행위는 지금 현존하는 삶에 대한 제한적인 변화를 가할 뿐
그 생명의 출현 혹은 그 생명의 출현과정에는 결코 개입할 수 없다.
은총의 경험은 사실은 이해가 되지 않는 영역일런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은총을 경험을 한다 하여도, 단지 그 경험을
헤아리기가 대단히 어려울 수 있다. 그것은 우리의 인식을 넘어
끊임없이 미끄러지면서 보이지 않는 것일 수 있으며, 오히려
우리의 인식은 그 영역을 볼 가능성이 대단히 어렵다.
단지 우리는 우리가 지금 은총을 경험하고 있다고, 고백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인간의 생명에 대한 엄숙성, 또한 우리의 생명의 그 끈질긴 잉태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한 부모님과 그 모든 사랑의 역사에 대한 유한한 우리의 신앙적 통찰이다.
저 푸른 생명나무를 언제나 가까이 대면하고자 하는 유한한 인간의 노력은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의 '존재의 근거'를 고백하고 해명해 왔다.
어쩌면 그에 대한 신앙인의 은총의 고백은, 매우 비과학적이고
가볍게 들릴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고백은 어떠한 과학적 추론과
고백보다 생명의 엄숙함을 존중하고 사랑하기 때문에 나오는
진실한 성찰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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